California, US

[San Diego] 한국 대학생의 미국 정착 생활기 - Reminiscence

janghan 2025. 2. 26. 13:30

 

약 6개월의 미국 생활이 곧 막을 내린다.

 

24년 8월 말에 와서 25년 2월에 말에 가니,

 

캘리포니아에서의 직장인 생활이 곧 끝난다.

 

끝날 때 쯤 되니, 바쁘지만 틈을 좀 내어, 회고록을 좀 작성해볼까 한다.

 

회고록이지만 제목을 reminiscence로 한 이유는 아래 글을 참고하면 알게 될 것이다

 

※ 본 글은 작성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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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일을 반성하며. 매일같이 생각한다.

 

오늘의 일을 그리고 어제의 일을.

 

그리고, 그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내일의 일이다.

 

2021년 후반,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지고, 그 찰나의 순간들에 이루어지는 선택의 순간에 있어,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을 이후에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인생을 살며 이루어지는 무수히 많은 선택에 순간에서 모든 일에 대해 최선의 선택을 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어날 일들을 미리 예측하고, 미리 계획하여 선택의 순간을 앞당겨, 그 선택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J가 98% 나오는 인간이 되어버린 까닭은 그리 멀리있진 않았다.

 

 

어찌하다보니, 뇌과학 연구실에 들어가 Perception(i.e., 인식), Predictive Coding(인간의 예측 능력과 관련된 시각피질 측면에서의 이론)에 대해 공부하니, 그러한 사실들이 더 명확하게 보였다.

 

우리는 상당히 왜곡된 측면을 살아가며 많이 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라 느끼며 살아간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그 속에서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이 발생해 나를 힘들게 하고 또 괴롭히고 잠 못 들게 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려고 하니,

 

즉,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내가 내 발로 걸어들어온 길이니, 내가 책임지고 지금 일어나는 모든 내 환경 속의 일은 내 선택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니 책임을 져라!

 

하고 나 자신을 옥죄어 왔다.

 

 

그런데,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내가 책임을 지려고 한 것.

 

이것은 곧 내 마음에서는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져 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바로잡고자, 소위 "남탓"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러의 개념을 빌리고 결심한 것이라, 남탓이라 하면 다소 의역된 것이지만, 이 글에선 그냥 이렇게 쓰고싶었다.)

 

남의 탓으로 돌린다는 의미는 아니고, 사실, 타인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individual psychology)

 

 

즉, 그 어떤 사람이 나와 다른 삶을 살아왔고, 내가 보인 행동에 의해 어떤 반응을 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고,

 

그 반응은 온전히 상대방이 해결해야할 문제이고 나의 손을 떠난 일이니,

 

내 선의와 관계없이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그럼 내 과제에 대한 것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처리해야하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즉, 과거의 일에 대해서 배우고, 어떠한 문제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이를 학습하는 것.

 

이는 교과서 적인 풀이이고, 어찌됐든 그렇게 학습했다고 치자. (사실, 인간은 매우 똑똑하기 때문에 인지적으로 "학습했어"라고 하지 않아도 비슷한 상황에 대해서 이전의 기억을 자연스레 꺼내오곤 한다. 이 정도는 경험에 의해 느낀 가중치에 의존한다.)

 

그럼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내 과제로 인해 내가 받는 고통은 어떻게 처리해야하는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슬픈 영화, 슬픈 드라마를 보고 느끼는 우리의 감정.

 

살면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대한 후회와 그 일을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감정의 가중치.

 

가령, 자다가도 이불킥을 찰 만큼의 창피한 감정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의 감정까지.

 

이러한 감정의 가중치는 어떻게 다스릴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해결책을 내어 놓는다.

 

바쁘게 살것. 까먹을 것. 집중할 것. 생각이 흐르게 둘 것. 명상할 것. 등.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생각이 나도록 하는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것들을 체험하고, 그 생각이 찾아와도 '왔구나?' 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말이 쉽지."

 

 

그걸 모든 사람이 몰라서 안 했고, 알게 되어서 모두가 잘 하면 우리는 모두 감정적으로 평화로운 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이 방법론에 대해 굳이 깊게 언급하진 않겠다.

 

 

살면서, 겪어본 주관적이고 현상적인 경험을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주는 부분이 크며, 삶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고, 작고 큰 목표들을 이루며 살아가다 보면 가중치가 덜어지며, 그 가중치들을 내면에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부분이 되기도 한다.

 

결국, 내가 하고자하는 말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는 것이다.

 

(더 깊게 들어가면 psychiatry 분야의 이론들을 접하게 되니 이쯤하겠다.)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상황에 직면해왔고 또 직면할 예정이다.

 

그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 현대 학자들은 한 가지 해결책을 내어 놓는다.

 

 

 

여러 가지 서적을 읽으며,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는 방법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봤다.

 

그 중에서도, 최근 심리학자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걱정"에 대한 많은 진보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현상들과 나의 경험을 앞으로 "걱정"이라는 단어로 퉁치려고 한다.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은, 제목만 보면 마치, 세상 살아가며 일어나는 매일같은 일상에서의 조언,

 

예컨대, 습관 정착 방법이나 사람들과 살아가는 데 있어 해결책을 내놓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느꼈겠지만,

 

정말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신념을 가지고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수히 많이 나온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그리고 강하게 언급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기"이다.

 

 

걱정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를 설명해놓았다.

 

우리는 자기계발서들을 읽지만, 금방 바쁜 삶에 치어 까먹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데일 카네기는 이 책을 항상 가슴에 품고, 까먹을 때마다 꺼내어 읽으라고 말한다.

 

 

 

최근 여러 책들을 읽어보고, 느낀 바와 나의 여러 경험들을 토대로 볼 때, 나의 결론은

 

"잘하지 말자."

 

인 것 같다....

 

허무한 결론이지만,

 

이것이 내가 내린, 소위 "걱정하지 않는 법"이다.

 

 

 

내가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내용들은 이 "걱정"이라는 키워드를 관통한다.

 

이 걱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실수 없이 잘 해내고, 살아가는 데 있어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곳에서부터 온다.

 

또한, 아들러가 주장하는, 사람의 "인정 욕구"로부터 온다.

 

그러나 이 인정 욕구는 사람을 더 많은 것을 하게 하지만, 사람을 병들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들러는 아이들에게 칭찬하지 말라고 한다.

 

"칭찬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감사를 표할 것."

 

칭찬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하는 것과 같다.

 

 

다시 돌아오자면,

 

이 걱정을 하지 않기 위해 여러 스텝이 필요했다.

 

우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 할 것.

 

그리고 결과를 그저 바라볼 것.

 

여기서 이 결과는 일반적으로 어제의 나보다 발전한 오늘의 내가 내린 결론이기에,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이 건강한 비교는 우리를 더 건강하게 한다.

 

한편, 내가 아무리 좋은 결과를 내었다고 한들,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나보다 더 좋은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비교한다면, 이는 끊없이 팽창하는 우주와도 같이, 끊임 없는 지옥을 당신에게 선사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2023년에 SNS를 완전히 끊어버린 이유이다.

 

사람의 완성된 형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많은 상황들을 모두 배제한 채, 사람의 최고의 상황, 베스트 장면들을 공유하는 공간.

 

그 공간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메말라 간다.

 

 

그 삶과 나의 현재 모습을 비교할 때, 나는 한 없이 작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내가 하지못하는 것들을 이미 충분히 혹은 넘치게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했고, 나 자신을 자책했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고,

 

 

어제의 나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일상의 감사함을 알고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아직, 이론적으로, 그 문장 자체로 바로 위 문장을 이해하곤 있지만, 가슴 깊이 느끼는 것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위의 주장들도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지, 그 속에서 행복과 삶의 활력을 얻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 속이 지옥이 아닌 천국일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말한 것은, 그 공간에 중독되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안 좋은 상황속으로 자기 자신을 몰아넣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빠져 나와야 한다.

 

그리고 깨달아야한다.

 

나는 소중하고, 내 하루하루는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내가 느끼는 여러 압박감,

 

캘리포니아에서 일을 하며,

 

부담되는 미팅이나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속에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결국 나는 나의 위치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 했고,

 

항상 준비한 것보다 못해도 괜찮다고 말하며 위안했다.

 

그렇게 하면,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잘해야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조금 더 여유로운 발표를 할 수 있었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을 수 있고,

 

오늘의 평화로운 하루가 느끼기에 따라 지옥과도 같았을 수도 있다.

 

당장 모든 걸 그만 두고 싶을 수 있고,

 

여러 압박에 너무 답답한 하루가 지속될 수도 있다.

 

 

이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움직이는 것"이다.

 

계속 움직여야한다.

 

 

 

 

결국 이 경험에서 내가 느낀 것은,

 

- 하루하루 소중하게 느낄 것.

 

- 현재의 상태에 감사할 것.

 

- 최선을 다할 것.

 

 

 

 

평온을 위한 기도로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평온을 위한 기도>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하나님 저에게 평온함을 내려 주옵소서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의 차이를 아는 지혜를.

 

[The Serenity Prayer [평온을 위한 기도]|작성자 혜연성화]